t">영화에 너무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기고, 영상으로 풀어내려하게 되면 당연히 영화의 전개에 무리가 갈 수밖에 없다. 매끄러운 흐름선을 위해선 가차없이 쳐내져야 할 장면들이 장미의 가시마냥 튀어나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미의 가시도 결국 장미의 특징이듯 많은 감정선 또한 영화의 특징이 될 수 있다.
이 영화의 등장인물들의 감정선을 바라볼 수 있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첫 째는 자기가 그 상황에 놓인 등장인물 마냥 이입하는 것이고 둘째는 3인칭 관점으로 살짝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것이다. 이 영화는 아주 적절하게 그 관점이 나뉜다. 쉽게 말해 나에게도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느냐, 하면은 이입해서 바라보면 되는 상황인 것이고 그게 아니라면 그 상황을 바라보기만 하면 된다.
가족애가 풍부한 영화든 액션으로 좀비를 때려잡는 영화든 결국 이 영화는 좀비 영화다. 미지의 존재가 우리에게 위협을 가할 때 우리가 보이는 반응은 혼돈 혹은 당황이다. 좀비영화가 관객에게 주는 즐거움은 그 미지의 존재를 때려잡을때의 쾌감 혹은 거기서 오는 공포감?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일반적으로는 좀비가 주는 두려움이 인간 사이 신뢰에 미치는 영향이 사람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으로 작용하는 신선함에 재미가 있을 수 있겠다, 라고 생각한다. 워킹데드같은 좀비물에서는 이미 메인소재가 되었고 액션은 게임에서도 질리게 즐길수 있다. 그런 요소들을 모두 담고 있는 부산행은 왜 특별한가?
감정, 액션, 클리셰면으로 나눠볼 수 있겠다. 감정적인 요소는 이미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조금 더 언급하겠다. 단순히 사람이 죽어가는 장면에서 그 사람이 느끼는 슬픔, 언제 죽을지 자신이 안다는 슬픔은 설명하기도 말하기도 애매하다. 그래비티에서 닥터 스톤이 밝혔듯 자신이 언제 죽을지 안다는건 너무나 두려운 일이다. 감독은 이를 단순한 대사로, 표정으로, 혹은 행동으로 표현할 수 있고 이는 감독의 의도에 따라 달라진다. 알폰소 쿠아론과 연상호의 차이라면 인물이 누굴 위해 살아야했느냐, 를 중점적으로 연출한 듯 싶다. 지나친 해석일 수 있겠지만 연출이 이미 인물에게 몰입했다는 것이다.
액션은 일반적인 좀비물과는 사뭇 다르다. 일단 우리나라는 총이 없다. 워킹데드나 레프트4데드 같은 좀비물에서 나오듯 총으로 한방에 좀비 머리를 쏴서 날려버리는 동네랑은 완전 좀비가 다른 대접을 받는다는 얘기다. 그만큼 좀비는 더 강하고 끈질겨진다. 하지만 마동석이란 변수는 충분히 액션씬을 즐겁게 만들어줬고 훌륭했다. 월드워Z를 오마주했다고 사람들이 말하는 장면도 있다. 하지만 대량의 좀비가 쏟아져 개미떼처럼 쏟아져나오며 사람들을 쫓아다니는 것이 일반적인 좀비물인데, '일반적이지 않은' 좀비물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가? 좀비가 숨어서 머리라도 쓰며 갑자기 사람을 덮쳐야하는가? 그렇게 된다면 이 영화는 너무 일방적인 영화가 되어버리지 않는가. 영화적 긴장감과 상황 전달을 위해서는 필요했던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충분히 좀비 추격전에 있어서는 숨막히는 영화였다.
과한 클리셰는 진부하다고 욕을 먹기 딱좋은 영화로 만들어버리는 요소지만, 아주 없는 클리셰는 그냥 이 영화를 반전영화로 만들어버리겠다는 의도를 보여주는 것이거나 적당한 흥행은 아예 제쳐두고 시작하겠다는 의미이다. 클리셰는 영화가 발전하면서 전통적으로 이어져온 일종의 공식이나 마찬가지다. 이는 관객이 영화를 이해하는데 쉽게 해주는 역할을 하기도 하고 적당히 긴장감을 이완시켜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 영화 또한 뻔하지 않느냐, 하고 욕을 한다. 해운대나 감기, 연가시같은 휴먼 재난영화는 이미 성공을 거뒀고 다들 비슷한 요소를 가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왜 해운대는 흥행했고, 상대적으로 감기와 연가시는 혹평을 받았는가? 해운대는 여러 인물들의 감정선을 함께 보여주며 자연스럽게 이어나가려했다. 하지만 감기와 연가시는 주인공 가족의 이야기에 대부분을 할애했다. 이렇게 되면 관객은 주인공 외에 특별히 신경쓸 사람이 사라지기때문에 극적 긴장감이 이미 이완된 상태란 것이다. 여기서 뻔한 클리셰를 넣어버리면 그냥 '주인공이 애쓰는 영화' 밖에 안된다.
부산행과 해운대, 연가시를 감기와 따로 보자. 무슨 재난 영화든 사람간의 갈등은 존재한다. 그 갈등을 적절하게 배치하는 것이 감독의 역량이고 영화를 이끌어나가는 키가 된다. 앞의 세 영화에서는 갈등에 어떻게든 등장인물들이 낑기게 된다. 더 자세히 말하자면 그 갈등은 곧 주연의 갈등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갈등에 더 몰입하고 주연에게 공감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감기는 어땠는가? 특별히 갈등이라 할만한 걸 꼽자면 대통령이 미군 수뇌부와 겪는 갈등이었다. 물론 이 갈등의 결과가 주인공을 죽이느냐 살리느냐를 결정할 터였지만, 어차피 주인공은 할 수 있는게 없었다. 그리고 대통령이 그 갈등을 해결하며 시선이 대통령에게 주목된다. 실제로 영화 평을 봐도, 주연보다 차인표 언급이 더 많다. 갈등은 그 자체로도 중요하지만 해결이 중요하다. 결국 시선이 쏠리게 되는 쪽은 해결사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부산행은 성공적으로 주인공에게 시선을 몰아줬다.
결말이 허무하다는 사람이 많다. 좀비 영화는 근본적으로 '미지'를 전제에 두고 나아가는 장르이다. 거기서 명확한 해결법이 나온다면 그건 좀비물이라고 불리면 안된다.
